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를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 하였다.
‘내포’는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어 배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는 장소이다. 내포를 비롯하여 서해안 여러 지역에는 1784년 이승훈 세례 이전부터 중국으로부터 건네지는 서학 내지 천주교 문화와 신앙을 접하고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확산되었던 실학사상의 분파인 서학이 내포 선비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내포의 서학자들은 서울의 실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내포의 양반, 중인, 서민 등 모든 계층에서 천주교로 발전하였다.